국민 먹거리 가격을 뒤흔든 담합, 결국 공정위 칼을 맞았다
장사해보면 안다. 원재료 값이 한 번 흔들리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가는지. 밀가루는 빵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라면, 국수, 과자, 제과제빵, 식자재 유통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국내 밀가루 시장을 쥐고 있던 7개 제분사가 6년 동안 가격과 물량을 맞춰 움직인 정황이 드러났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결국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건 단순한 기업 제재가 아니라, 민생을 통째로 건드린 사건으로 봐야 한다.
공정위가 밝힌 과징금은 총 6710억4500만원이다. 담합 사건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격을 다시 산정하라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검토가 아니라 실제로 부과됐고, 앞으로 몇 년간 가격 변동 내역도 보고해야 한다. 시장을 왜곡해 놓고 나중에 서류 몇 장 내면 끝나는 시대는 아니라는 뜻이다.
시장 점유율 90%에 가까운 과점 구조, 담합이 쉬웠던 이유
이번에 문제 된 제분사는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곳이다. 이들이 국내 B2B 밀가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매출액 기준 87.7%, 또 다른 집계로는 88% 수준이다. 사실 이 정도면 시장이 아니라 사실상 과점 체제다. 경쟁이 치열해야 할 곳에서 몇몇 회사가 줄을 맞춰 움직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식품업체와 소비자에게 넘어간다.
공정위는 이들이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담합했다고 봤다. 단순히 한두 번 가격을 맞춘 수준이 아니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물량 담합이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 합계 24차례에 걸쳐 진행됐다고 한다.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건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움직였다는 얘기다.
대표자급 회합과 실무자급 회합도 총 55회나 있었다고 한다. 큰 방향은 윗선에서 정하고, 세부 실행은 아래에서 다듬는 식이었다니, 이런 건 한 번 시작되면 쉽게 멈추지 않는다. 현장에서 거래하는 사람들은 가격표가 왜 바뀌는지도 모른 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맥 값 오를 때는 빨리 올리고, 내릴 때는 늦췄다
이번 사건에서 더 씁쓸한 대목은 타이밍이다. 밀가루 원재료인 원맥은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그러니 국제 시세가 오르면 비용 압박이 생기는 건 맞다. 문제는 그걸 빌미로 인상폭과 시기를 서로 맞췄다는 점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원맥 시세가 상승하던 2020년부터 2022년에는 원가 상승분을 신속하게 판매가격에 반영하려고 했고, 반대로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하락분 반영을 최대한 늦췄다.
이런 방식은 장사판에서는 아주 낯설지 않다. 원가가 오르면 납품가 올려 달라 하고, 원가가 내려가면 그때는 말이 없다. 그런데 이번엔 그걸 여러 회사가 한꺼번에 맞춰서 했다는 게 핵심이다. 경쟁이 아니라 합의였던 셈이다.
| 구분 | 내용 |
|---|---|
| 담합 기간 | 2019년 11월 ~ 2025년 10월 |
| 담합 횟수 | 총 24차례 |
| 회의 횟수 | 총 55회 |
| 시장 점유율 | 87.7% 또는 88% |
| 과징금 | 총 6710억4500만원 |
가격은 얼마나 뛰었나,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
공정위가 제시한 수치도 상당히 강하다.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과 비교했을 때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올랐다. 이건 그냥 물가 상승이라는 한마디로 덮기 어려운 수준이다. 원가 변동을 이유로 들더라도, 여러 회사가 한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면 소비자와 납품업체는 속수무책이다.
최소 상승폭 ■■■■■■■■■■■■■ 38%
최대 상승폭 ■■■■■■■■■■■■■■■■■■■■■■■■■■■■■ 74%
나는 이런 걸 볼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원재료가 오르면 납품가를 올려야 하는 현실은 이해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경쟁이 아니라 담합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비자는 선택권이 없고, 식품업체는 비용을 떠안고, 결국 마지막은 장바구니에서 맞는다. 라면값, 빵값, 과자값이 왜 비싸졌는지 체감하는 건 결국 서민이다.
정부 보조금 받는 동안에도 이어진 담합, 이게 가장 뻔뻔하다
이번 사건이 더 분노를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정부가 물가 안정 차원에서 지원한 보조금 471억원을 받은 시기에도 담합이 계속됐다는 점이다. 국민 세금으로 버티게 해 주는 동안, 그 틈을 타 가격을 맞췄다는 얘기다. 이런 건 시장의 실패를 넘어서 도덕성 문제다.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지원은 다 받고, 책임은 안 지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공정위는 이들 7개사가 2006년에도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는데 다시 같은 일을 했다고 봤다. 한 번 걸렸으면 조심하는 게 정상인데, 오히려 더 은밀하게 반복된 셈이다. 그래서 이번 제재가 더 무거웠던 것이다. 과징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관련매출액도 약 5조6900억원으로 잡혔다. 규모 자체가 다르다.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는 실효적인 행위가 필요하다”
공정위 조사관리관의 이 말은 그냥 행정 문구로 들리지만, 현장에서는 꽤 무겁게 들린다. 밀가루처럼 생활과 직결된 품목은 한 번 꼬이면 파급이 크다. 특히 외식업, 제과제빵, 식품 제조업은 원가가 조금만 올라가도 메뉴 가격을 바로 올리기 어렵다. 손님은 예민하고, 인건비는 빠져나가고, 세금은 그대로다. 이게 현실이다.
가격 재결정 명령, 늦었지만 필요한 조치다
공정위가 이번에 부과한 조치 중 눈에 띄는 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이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 수준으로 다시 산정하라는 뜻이다. 이 제도는 2006년 밀가루 담합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적용되는 사례라고 한다. 당시에는 가격 재결정명령 이후 약 5%의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물론 이번에도 비슷한 효과가 날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만 담합으로 올려 놓은 가격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1년에 두 번 보고해야 한다. 말하자면 감시를 지속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식의 후속 조치가 없으면 과징금만 내고 다시 예전처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제재를 받아도 시장 구조가 그대로면 담합 유인은 남는다. 그래서 이번 조치는 돈만 때리는 게 아니라, 가격 체계 자체를 건드리겠다는 의미가 있다.
정부가 요즘 민생 침해 행위에 강하게 나서는 흐름도 읽힌다. 공정위가 전원회의 심의가 끝나기 전에 사건을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었다고 한다. 조사 속도도 빨랐다. 평균적으로 300일 걸리는 담합 사건을 4개월여 만에 마무리했다는 설명까지 나왔다. 이건 늦장 대응으로는 여론을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니다. 밀가루가 오르면 빵집이 흔들리고, 빵집이 흔들리면 주변 상권도 같이 흔들린다. 원가를 핑계로 한 담합은 결국 소비자와 자영업자가 뒤집어쓰는 구조다. 공정위가 정말 시장을 바로잡을 생각이라면, 밀가루에서 끝내지 말고 식품 전반의 가격 짬짜미를 더 세게 들여다봐야 한다. 이런 건 한 번 적발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숨은 손이 또 어디서 움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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